[풍경탐험]제주 애월읍 구엄리 소금빌레(돌염전) & 등명대(도대불) 탐방

2025. 7. 28. 23:28섬&해안풍경


   안녕하십니까?

   풍경탐험가 랫츠고(래's Go)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도 해안 바닷가를 걸어서 여행하는 '걸어서 제주바다 한바퀴'라는 챌린지를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주 바닷가를 걸어서 여행하다 보면 종종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풍경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제주만의 전통 소금생산 방식인 돌염전("소금빌레") 풍경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소금은 물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성분일 뿐만아니라 음식의 맛을 내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조미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소금이 흔한 시대지만 수백년까지만 하더라도 소금은 국가간 또는 지역간 희귀한 무역 상품으로 보다 더 많은 소금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나 부족간 전쟁이 발생할 정도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바닷물에는 다량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남해나 서해에서 염전에 바닷물을 가두고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천일염 생산이 가능하였으나, 제주에서는 지질 특성상 육지와 같은 염전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바닷물을 가마솥 등에 넣어서 끓이거나 염전 대신 바닷가의 넓적한 천연암반 위에 허벅으로 바닷물을 길어 올린 다음 일정기간 수분을 자연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소금빌레(빌레는 제주어로 '너럭바위, 즉 넓적한 바위'라 뜻입니다.)는 바로 이렇게 제주에서 전통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던 대표적인 유적지입니다. 소금빌레 입구 게시판에 기재된 내용을 요약하면, 소금빌레를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한 것은 조선 명종 14년(1559년)경부터 1950년대까지 였으며, 1년 중 주된 생산시기는 4월~6월(장마철이나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는 소금 생산이 불가하였을 것임)이었고, 소금의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은 7일 정도, 연간 생산량은 28,800근(17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제주에는 구엄리 소금빌레와 같은 염전이 총 23개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애월읍 구엄리가 소금빌레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은 첫째, 구엄리 포구 인근에 길이 300여미터 너비 최대 50미터(약 1,500여평)에 달하는 넓적한 천연암반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제주를 여행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제주 해안의 현무암 암반은 대부분 평평하지도 않고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등 표면이 매끄럽지도 않은데, 애월읍 구엄리에는 표면이 비교적 매끄러운 암반이 상당히 폭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표면이 매끄러운 암반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해수면으로부터 적정한 높이를 확보하지 않으면 높은 파도나 밀물이 수시로 침범하여 염전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을 텐데 구엄리의 암반은 조수의 잦은 침범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적정한 높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찰흙(※현재는 황토색 색소를 탄 시멘트로 시공됨)으로 제법 두터운 둑을 쌓았는데, 둑은 왜 쌓았으며 경지정리 전의 논밭처럼 구획의 크기나 모양이 반듯하지 않은 사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천연 암반이 제법 경사가 져 있어 바닷물을 적정하게 부어 소금생산량을 늘리려 적당한 높이의 둑을 쌓았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아울러, 진흙으로 쌓은 둑의 모양이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암반 중간에 작은 크랙(틈)이 있으면 소금물이 크랙으로 흘러 내리거나 최종 생산된 소금 결정을 암반의 틈에서 채취하는데도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틈을 메우기 위해 크랙 선을 따라 적당한 높이의 둑을 쌓았겠지요.

  그런데 위 사진에 파란색 플라스틱 용기를 넣은 사각형의 돌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 구조물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혹 바닷물을 농축시키는 도중에 비라도 오게 되면 농축된 소금물을 일시적으로 거둬들여 일정한 장소에 보관하였다가 비가 그친 후에 소금물을 암반 위에 다시 부어 소금의 생산을 계속하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면, 사각형의 돌 구조물은 농축하던 소금물을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봅니다. 과거에는 큰 항아리 같은 것을 썼겠지만 플라스틱 용기가 도입된 이후에는 플라스틱제 용기를 사용하지 않았을지요.

 (※비전문가의 추측에 불과하니 혹 구체적인 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이라도 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 하늘이 흐린 사진들은 지난 5월에 방문하였을 때 담은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의 좌측 암반에도 둑을 쌓은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데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에 일부 구역에만 소금빌레를 재현해놓은 것이라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도 상당히 많은 곳인데 규모를 조금 더 크게 하여 제대로 재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현재 소금빌레를 재현한 곳에 관광객들이 함부로 둑을 밟고 다니지 않도록 출입 통제선을 쳐두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구엄리 소금빌레 유적을 관람한 이후에는 반드시 소금빌레 주변의 독특한 암반도 꼼꼼히 둘러볼 것을 추천합니다.

▲남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보면 소금빌레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암반의 규모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암반의 중간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아주 특이한 곳도 있습니다.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용이나 괴물의 등위에 올라탄 듯한 기분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이 곳 암반들은 모두 과거에 소금빌레로 이용되었겠죠.

▲바닷물에 잠긴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암반 하단부에는 나름 훌륭한 주상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북의 등껍질같이 갈라진 암반 상단도 어쩌면 분출된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진행되던 절리의 흔적은 아닐까요?

 

 제주에는 23개의 전통 방식의 돌염전이 존재하였다고 하나, 현재 돌염전의 형태가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은 바로 이곳 구엄리 소금빌레이며,

제주시 용담동 '어영마을 소금빌레'와 제주시 외도2동 '연대소금빌레'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이전에 방문했던 '어영마을 소금빌레'  사진도 몇 장 올려봅니다.

 

  제가 구엄리 소금빌레(돌염전)을 적극 추천하는 사유는, 첫째 제주만의 전통적인 소금생산 방식인 돌염전을 탐방하면서 인근의 독특한 해안 풍경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며, 둘째 인근 구엄리 포구에 있는 구엄리 등명대(전통적인 민간 등대로서 '도대불'이라고도 함)도 함께 둘러본다면 더욱 의미있는 제주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구엄리 등명대는 구엄해녀의집 식당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GS25애월구엄점 인근 도로변 주차장에 주차하거나 소금빌레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약 300여미터 정도 걸어 오시면 됩니다.

▲사찰 등에서 석등에 호롱불을 넣어 주위를 밝혔듯이 저 사각형의 공간에 호롱불을 넣거나 관솔불을 피우는 방법으로 야간에 바다로 고기잡이하러 나간 포구 주민들에게 포구의 위치를 알리고 어두운 밤에 포구로 복귀할 때 길잡이로 삼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부족한 글과 사진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하시길 기원드립니다.

Life is beautiful!   Nature is viewtiful!